환경오염이 날로 심각해져 가는 요즘, 실내에서 기르는 화분이 탁월한 공기정화 효과로 우리의 건강에 큰 기여를 한다. 정성스럽게 가꾸면 집안 공기를 깨끗하게 할 뿐만 아니라 마음도 정화시켜 준다. 차제에 실내 공간을 쾌적하고 아름답게 꾸며보자.
날씨가 추워지면서 실내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실내 공기에도 예민해져 있을 때다. 실내가 건조하거나 탁하면 일상생활이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기 마련. 창문을 열어 공기를 순화시켜도 보지만 그때뿐, 딱히 호전되는 것 같지는 않다. 외부의 맑은 공기 유입도 중요하지만 주로 실내에서 생활하는 직장인이나 주부들에게 내부 공기의 청정함은 더 절실하다. 하루의 대부분을 그 실내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산에 올랐을 때의 상쾌한 공기를 집에다 가져다 놓은 순 없을까?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각 가정에서는 이미 공기청정기와 정수기가 필수 품목이 되고 있다. 하지만 공기청정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최근엔 공기청정 효능을 보이는 식물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실내 습도도 자연상태에 가깝게 조절해 주고 인테리어 효과로도 뛰어나다. 모든 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할 때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물과 산소를 배출하는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면서 공기 중의 오염물질도 함께 흡수하여 분해시킨다. 이러한 식물의 생리작용이 실내 공기를 정화시켜준다. 그중에 정화 효과가 큰 식물을 ‘공기정화용 식물’이라고 한다.
공기정화 식물은 특히 새집증후군 예방에 탁월하며, 공기오염 물질과 냄새 제거, 음이온 발생, 전자파 차단, 소음 차폐 등에 효과가 있다. 공기 중에 있는 미세먼지를 제거하고, 세균을 살균하며, 유독성 기체를 분해하여 공기를 정화한다. 또한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두통과 발열 등 여러 증상을 나타내는 새집증후군의 주범은 포름알데히드, 벤젠, 아세톤, 암모니아 등 건축용 내장재에서 발생하는 유해 화학물질로 두통, 천식, 알레르기, 암, 발열, 비염, 손 떨림 증상 등을 유발하는데 공기정화 식물은 그 유해 물질을 없애주는 탁월한 기능을 갖고 있다.
순수한 산소 음이온을 방출하는 공기정화 식물은 대부분 키가 1m 크기며 잎이 넓은 관엽식물로 산세베리아, 파키라, 벤자민, 고무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산세베리아는 음이온을 다른 식물보다 30배 이상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잎의 무늬가 선명해 실내 인테리어에도 적합하다.
공기정화 식물은 각각 그 특징이 있어 거실, 침실, 주방, 공부방 등 공간 기능에 따라 적합한 것을 놓는 것이 좋다. 거실은 외관상 보기 좋고 수분 방출효과가 큰 아레카야자, 인도고무나무, 스파티필름 등이 좋고, 침실은 방의 공기정화 기능이 활발한 호접란, 산세베리아, 선인장 등이 좋다. 주방은 요리할 때 발생하는 일산화탄소를 잘 빨아들이고 음식 냄새 제거에도 좋은 산호수, 스킨답서스, 스파티필름 등이 좋고, 화장실에는 암모니아 제거 기능 등이 탁월하고 음지나 습지에서도 잘 견디는 관음죽이나 맥문동 등을 놓으면 좋다. 공부방에는 산세베리아나 로즈마리 같은 허브류를 두면 공기를 청정하게 해서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베란다에는 빛을 많이 필요로 하므로 팔손이 나무, 화분에 심은 국화, 허브 등이 좋다.
실내 분위기도 바꾸고 공기도 정화시켜 쾌적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는 식물을 소개한다.
● 산세베리아
천년란이라고도 하는 산세베리아는 다른 식물보다 30배 많은 음이온을 발생시켜 공기청정 효과가 단연 탁월한 식물. 새집증후군을 일으키는 포름알데히드를 흡수하고 밤에도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에 침실이나 어린이방에 놓아두면 좋다. 또한 생명력이 강해 초보자가 키우기에 좋은 식물로 키울 때 주의 할 점은 아열대 식물이기 때문에 20도 이상에서 잘 자라고 15도 이하에서는 생장이 멈추고, 5도 이하에서는 뿌리가 썩기 때문에 겨울에는 관리에 주의를 요한다. 한 달에 한 번 물을 준다.
● 아레카야자
황야자 나무로도 불리우는 아레카야자는 야자류 중에서 가장 품질이 뛰어나고 분위기 있는 품종 가운데 하나로, 실내 환경에 강하며 대량의 수분을 방출하여 유독 화학물질을 제거한다. 외관상으로 아름다워 거실이나 사무실에 놓아두면 좋다. 관리할 때 주의할 점은 평상시 햇빛보다는 밝은 그늘에 놓아두어야 한다. 표토가 마르면 2~3일 후에 소량의 물을 준다.
● 인도고무나무
포름알데히드와 실내 미세분진 제거에 효과가 있다. 카펫이나 벽지 등에서 나오는 유독가스를 흡수하고 머리를 맑게 한다. 밝은 곳이나 먼지가 많은 창가 쪽에 배치하면 효과를 볼 수 있고, 반그늘에서 잘 자라며 물을 자주 주어야 한다. 광택이 있는 잎 때문에 인테리어를 할 때 많이 선호하는 식물이다.
● 스파티필름
메니큐어 제거용 아세톤은 물론 새로 칠한 페인트에서 나온 공업용 아세톤도 흡수한다. 개별 보일러가 있는 곳에 스파티필름을 보일러실 앞에 놓으면 불완전 연소된 유해 가스를 빨아들여 공기가 쾌적해진다.
● 관음죽
중국 관음산에서 자라는 대나무 같은 식물 관음죽은 야자나무 중 가장 작은 수종이다. 음지식물로 빛이 많지 않은 실내에서도 잘 자라며 열대식물이지만 0도의 추위도 견디며 암모니아 흡수 능력이 뛰어나 화장실에 두면 좋다. 여름에는 물을 듬뿍 주고 겨울에는 거의 주지 않는다.
● 국화
국화꽃 화분은 공기 중의 유독가스나 암모니아를 흡수 제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전자파로 인한 두통을 없애주고, 눈의 피로를 없애주므로 컴퓨터 사용이 많은 사무실이나 화장실에 놓아두면 적당하다.
● 벤자민고무나무
잎이 많고 모양이 수려해 거실에서 많이 기르는 식물이다. 잎이 작은 대신 많은 만큼 공기청정효과도 크고 난방기나 주방조리 중 불완전 연소된 이산화황과 이산화질소도 흡수한다. 직사광선을 좋아하고 13~15도에서 가장 잘 자란다.
● 호접란
꽃말은 ‘행복이 날아온다’는 뜻으로 보라색의 화려한 꽃을 피우는 양란으로 특히 선물용으로 人기가 높다. 밤에 산소를 내뿜어 침실에 놓아두면 좋다. 물주기는 화분의 흙 표면이 건조된 다음 1~2일을 기다려 해준다. 꽃잎에 물이 닿지 않도록 주의한다.
● 선인장
실내공기정화 능력이 매우 우수하며 조직 내에 많은 수분을 오랫동안 보유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오랜 건조에도 견딜 수 있다. 실내식물과는 다르게 주간에 이산화탄소를 방출하고 야간에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특성이 있어 침실에 두면 좋다. 또한 전자파 차단 효과가 있고 한 달에 한 번 물을 주면 된다.
● 산호수
공기정화 식물 중 보기 드물게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것으로 붉은 열매가 바닷속 산호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두운 곳에서도 잘 자라고 일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뛰어나 주방에서 키우면 좋다. 줄기가 옆으로 뻗어나가는 특성이 있으므로 양옆으로 공간을 넉넉히 마련해 주는 것이 좋다. 생육 적정온도는 20~26도 정도로 온도만 잘 맞춰주면 일년 내내 하얀 꽃이 피고 붉은 열매가 열린다. 직사광선보다는 반그늘이 좋고 물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2, 3일에 한 번 정도 듬뿍 물을 준다.
● 스킨답서스
덩굴성 열대 상록 관엽식물. 주로 화분에 심어서 막대기에 감아올리거나 줄 화분에 심어서 벽에 걸어두는 등의 분화용으로 많이 써 왔으나 최근에는 바구니, 꽃다발, 꽃꽂이 등의 꽃장식용으로도 많이 쓰인다. 일산화탄소의 제거능력이 다른 공기정화 식물보다 5배 정도 뛰어나고, 음지에서 잘 자라 생명력이 강하다. 추위에는 약한 식물이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다.
● 맥문동
화단의 경계나 모서리를 장식할 때 주로 쓰이는 맥문동은 에코플랜트로 매우 적합한 식물이다. 인테리어 공간을 장식할 때도 적합하다. 공기 중의 암모니아를 제거하는 능력이 뛰어나 화장실에 적합하다. 화분의 흙을 항상 습하게 해주면 좋다.
● 로즈마리
허브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실내 화초로 로즈마리 특유의 은은한 향이 퍼지면서 음식냄새나 축축한 습기를 없애준다. 햇볕이 잘 드는 침실 창가나 주방 창가에 놓아두면 음식냄새는 물론 쾌쾌한 냄새까지 없앨 수 있다. 기억력에 도움이 되는 물질을 배출하므로 공부방에도 놓아두면 좋다. 로즈마리는 한번 터를 잡고 자라기 시작하면 수명이 길기 때문에 심기 전에 기를 장소나 좋은 흙을 잘 준비하여야 하며 해가 잘 들고 물이 잘 빠지는 곳이 좋다. 뿌리가 항상 젖어있는 것을 안 좋아한다.
● 팔손이나무
우리나라 남부 해안에 자생하며 손가락 여덟 개를 펼친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음이온 방출 및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기능이 매우 우수하며 공해에도 강하다. 공부방에 놓으면 좋다.
● 파키라
보통 ‘돈 나무’라고 부르는 식물로 풍수에 사용되는 나무 중 하나다. 가정에 행운과 돈을 갖고 온다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흡수기능이 탁월해 공기정화식물로도 좋고 보기에도 아름다우면서 행운을 가져온다고 하니 웬만한 가정이나 사무실에 한 그루쯤 두고 있는 것 같다. 손바닥 모양의 잎이 아름답고, 꽃도 큼직하고 아름다워서 관엽식물로 인기가 있으며 반그늘을 좋아하고 배수가 잘 되는 땅에서 잘 자란다. 건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산화탄소를 없애는 능력이 뛰어나 공기 정화에 좋은 식물이기 때문에 아파트의 베란다 또는 거실에서 키우면 좋다.
● 행운목
가장 대중적인 관엽식물 중의 하나. 사무기기와 실내장식 등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을 흡수하고 공기를 정화한다. 이름이 좋아서 집들이나 신장개업 선물로 자주 쓰이는데 그만큼 효용효과도 높은 편이다. 원래는 밝은 곳을 좋아하지만 음지에서도 잘 견딘다. 모래흙에서 잘 자라고 수분을 많이 흡수하므로 화분표면에 흙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자주 준다. 포름알데히드를 제거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향기가 좋은 백색의 작은 꽃이 피어 관상용으로도 좋다.
[Mac] iTunes 에서 한글 태그가 깨질 때 ( OS X - Tiger, 언어옵션 English - 한글 순)
ㅇ 일단 아래 있는 gura Unzip으로 음악파일의 압축을 풀면 파일이름이 정상으로 보임.
ㅇ iTunes 어플리케이션의 Show Package Contents 로 들어가서 Contents/Resource/ 폴더의 English.lproj 를 압축해놓고(백업차원) 지워 버린다.
ㅇ 태그에 문제가 있는 파일들을 iTunes에서 선택하여 우클릭 - ID3 태그 변환... 메뉴 선택하고 1. 텍스트문자변환 - 유니코드 복귀, 2. 텍스트문자변환 - ASCII를 ISO Larin-1로 순으로 만져준다. 그러면 깨졌던 ID3 태그의 변환 완료.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2005.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stayed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qui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So why did I drop out?
왜 자퇴했을까요?
It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mother was a young, unwed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put me up for adoption.
그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graduated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school.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지금 뒤돌아보면 참으로 힘든 순간이었지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자퇴를 하니 평소에 흥미없던 필수과목 대신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또 매주 일요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헤어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of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greattypography great.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배웠는데, 서로 다른 문자끼리 결합될 때 다양한 형태의 자간으로 만들어지는 굉장히 멋진 글씨체였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인 것이었고, 전 그 것에 흠뻑 빠졌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사실, 이 때만해도 이런 것이 제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매킨토시를 처음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아마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인쇄술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제 인생의 고비 때마다 힘이 되워줬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in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잘 맞는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은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company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become my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film, Toy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and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current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엄청난 일들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세상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쇼.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만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앞에서는 모두 밑으로 가라앉고, 오직 진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is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six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 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certainty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당장 죽는 건 원치 않습니다.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다 죽을 것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삶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이란 삶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단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잡음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desktop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polaroid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and then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엄지들고 차를 유혹해서 빌려타며 여행하는 것/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