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맥주와 소시지의 나라다. 그러나 와인의 나라이기도 하다. 프랑스가 레드 와인의 나라라면 독일은 화이트 와인의 나라다. 화이트 와인이라고 해도 라인강 서쪽과 동쪽의 화이트 와인의 맛은 많이 다르다. 정말 독일다운 화이트 와인의 맛을 보려면 라인강 동쪽의 프랑켄 지역으로 가보아야 한다. 게다가 10월은 독일 곳곳의 포도원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시기. 익숙한 리듬에 맞춰 포도를 따는 분주한 손길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아름답다. ●프랑켄:복스보이텔에 담은 바로크의 맛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독일 와인하면 ‘모젤’을 떠올린다. 모젤 와인이생산되는 모젤강 유역, 정확히 모젤-자르-루버 지역은 라인강 서쪽에 있다. 프랑스의 주요 와인 생산지역인 알자스 로렌 지방이 프랑스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독일적인 것처럼 독일의 모젤-자르-루버 지역은 독일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프랑스적이다. 역사적으로도 이 지역은 한때는 프랑스가, 한때는 독일이 번갈아가며 장악해 비슷한 점이 많다. 온화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것도 그렇고 가톨릭 전통, 농촌정서 등이 강한 문화적 전통도 그렇다. 그러나 프랑켄은 라인강을 넘어 동쪽으로 송곳처럼 파고 들어가는 와인지역이다. 이 지역은 대륙성 기후가 나타나 겨울에 많이 춥고 여름이 몹시 덥다. 또 겨울이 빨리 찾아와 포도가 서리를 맞을 가능성도 높다. 이런 기후조건 때문에 이곳에서는 잔당(殘糖)이 낮은 드라이하고 흙냄새가 나는 ‘남성적’ 화이트 와인이 많이 생산된다. 모젤 등 라인강 서쪽의 고급 화이트 와인이 주로 리슬링 품종의 것이라면 이곳의 고급 화이트 와인은 질바너 품종이다. 리슬링은 상쾌하고 가벼운데 비해 질바너는 풍성하다. 독일와인협회의 케리 스튜어트 여사는 질바너를 가리켜 ‘섹시 질바너’라고 부른다. 그녀는 “질바너 와인에서는나올 데는 나오고 들어갈 데는 들어간 섹시한 여자의 몸처럼 잘 짜여진 바디(body)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곳 포도밭은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거의 모두 남향의 비탈진 경사에 만들어졌다. 경사지역에 있다보니 기계작업이 힘들어 대개 사람의 손으로 포도농사를 한다. 대신 아우스레제나 베렌아우스레제같은 고급스러운 와인을 많이 생산할 수 있다. 그 작업은 오늘날 대부분 동유럽에서 온 노동자들이 하고 있다. 프랑켄의 중심도시는 뷔르츠부르크. 이 도시에는 슈타트리히 호프켈러(Staatlich Hofkeller, 1128년 설립), 율리우스슈피탈(Juliusspital, 1579년 설립), 뷔르거슈피탈(B¨urgerspital, 1376년 설립) 등 독일에서 열손가락안에 꼽히는 유서 깊은 와인 창고가 있다. 특히 국가소유의 호프켈러는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레지덴츠 궁’이라는 건물 지하에 있다. 레지덴츠 궁은 18세기 발타자르 노이만이 지은 독일 바로크 양식의 정수로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옮겨놓았나 싶을 정도로 화려하다. 그러나 이곳 호프켈러의 책임자인 안드레아스 베커 박사는 “레지덴츠 궁의 지상만 보는 것은 건물의 반쪽을 본 것에 불과하다”며 “독일에서는 지상의 소유권과 지하의 소유권이 다를 정도로 지하 공간의 와인창고를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프랑켄 지역의 와인은 ‘복스보이텔’이라고 불리는 주머니 모양의 고풍스러운 병에 담는게 특색이다. 뷔르거슈피탈의 판매책임자 라인하르트 사우어는 “옛날 사냥을 다닐 때 염소고환가죽에 물을 담아 다녔는데 그 모양을 본따서 와인병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복스보이텔이 쓰이는 지역은 그 특이함 때문에 ‘복스보이텔 루트’라고 불린다. ●라인강 서쪽:태양의 키스를 받는 곳 라인강 서쪽으로 넘어가면 라인강 동쪽 프랑켄과는 확연히 다른 온기가느껴진다. 라인강 서쪽에서도 모젤-자르-루버 지역 남쪽에 위치한 라인헤센과 팔츠 지역은 독일 최대의 와인생산지대다. 이 곳의 포도밭은 프랑켄과는 달리 완만한 구릉지대와 평지로 드넓게 펼쳐져 있다. 라인헤센의 중심도시는 마인츠다. 독일 3대 성당 중 하나인 마인츠 대성당 앞에서는 화, 금, 토요일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과일 야채시장이 열린다. 포도수확기를 맞은 요즘 이곳에서는 가볍게 페더바이세(Federweisse)라는 음료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본격적인 숙성단계에 들어가기 전 단계의 초기 와인인 페더바이세는 와인과는 달리 탁한 색깔에 저알코올이 과일주스를 연상시킨다. 인근 시골마을인 베흐트하임을 방문했을 때 게일 비어센크는 자신의 양조장을 구경시켜주면서 페더바이세를 한잔 권했다. 독일인은 누구나 페더바이세에는 양파케이크(Zwiebelk¨uchen)가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양파케이크를 곁들인 페더바이세의 달콤한 맛은 요즘 아니면 맛보기 어렵다. 팔츠는 온화한 기후와 풍광으로 인해 ‘독일의 토스카나 지방’으로 불린다. 이곳 바트베르크자버른에서 기계화된 대규모 와인양조장을 운영하는 알렉산더 로르히는 점심으로 자우마겐(Saumagen)이란 음식을 내놓았다. 물론 자신의 포도밭에서 생산된 향긋한 뮐러-투르가우 와인도 잊지 않았다. 뮐러-투르가우는 깔끔하고 짜릿한 리슬링이나 묵직한 질바너처럼 스타일리시하지는 않지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와인으로 선호된다. 돼지창자에 돼지고기 감자 야채 등을 넣어만든 자우마겐은 서민적 풍모의 헬무트 콜 독일 전 총리가 가장 좋아했던 이 지방의 전통음식. 와인과 잘 어울리고 한국인의 입맛에도 딱 맞는다. 뷔르츠부르크·마인츠〓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